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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신 별세 채명신 사망이유 / 초대 주월사령관 베트남전 사령관


베트남전쟁 당시 초대 주월남 한국군 사령관을 지낸 채명신 예비역 중장이 25일 오후 3시 숙환으로 별세했다. 항년 87세.

황해도 곡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황해도에서 교사로 근무하다 1947년 38선을 월남해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했다. 1949년 육군사관학교(육사 5기)를 졸업하고 이듬해 6·25 전쟁에 소위로 참전했다.

6ㆍ25 전쟁 때는 북한 지역에서 활동한 아군 유격부대의 지휘관으로 맹활약했으며, 베트남전에는 초대 주월한국군사령관으로 한국군을 성공적으로 지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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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베트남 참전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미군이 행사하겠다는 웨스트모얼랜드 미 베트남군사원조사령부(MAC-V) 사령관의 주장에 맞서, 채 장군이 한국군이 독자적인 지휘계통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득한 일화는 유명하다.

게릴라전 전문가로 명성이 높았던 채 장군은 독자적으로 행사하게 된 작전통제권을 바탕으로 한국군 특유의 중대전술기지(Company Tactical Base) 방어 개념 등을 적용, 상대적으로 적은 인명 피해로 아군이 베트남에서 안전하게 작전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다.

1953년에는 미 육군보병학교를 졸업했다. 휴전 후에는 9사단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난 후 5ㆍ16 쿠데타에 가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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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5사단장과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을 거쳐 5ㆍ16 쿠데타 직후 혁명5인위원회와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참여했다가 주월한국군 사령관에 임명되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1965년 주월사령관 겸 맹호부대장에 임명돼 1969년까지 4년 가까이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군을 지휘했다.

이후 육군 2군사령관을 거쳐 1972년 중장으로 예편했다.

군 복무기간 전투에서 세운 공로를 인정받아 태극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 등의 훈장을 받았다.

전역 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개헌에 반대해 예편 당했다. 퇴역 후에는 스웨덴, 그리스, 브라질 대사 등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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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태권도협회 초대 회장과 월남전참전자회 명예회장도 역임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베트남 참전유공전우회, 6ㆍ25참전유공자회 등 각종 참전자 단체에서 회장ㆍ총재ㆍ명예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참전자들의 명예와 권익을 지키는 데도 힘을 보탰다.
채 장군은 지난 2007년 본지에 ‘역사를 넘어 시대를 넘어’라는 제목으로 회고록을 연재하는 등 실전 참전 경험에 바탕을 둔 다양한 저술활동도 펼쳤다. 6ㆍ25 전쟁 때의 유격전 경험을 주로 담은 ‘사선을 넘고 넘어’(1994), 주월한국군사령관 재임시절을 주로 회고한 ‘베트남전쟁과 나’(2010)는 각각 해당 분야 필독서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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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올바른 역사가 국민에게 전달돼야 하며 역사의 교훈을 알지 못하면 불행하고 처참한 역사는 다시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며 전쟁을 모르는 젊은 세대들의 안보의식을 고취하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다.

유족으로는 부인 문정인 씨와 1남2녀가 있다.

장례는 육군장으로 진행되며,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실, 발인은 28일 오전 7시. ☎02-3010-2631